진천 답사를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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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천 답사를 가다.
원준희
코로나로 2년 이상 내내 답답하던 차 하남문화예술원에서 주최하는 역사 유적답사를 안내하는 문자가 내게 왔다. ‘위드 코로나(With Corona)에서 코로나 엑서더스(Corona Exodus)’를 통보하는 내용으로 내 눈에 들어왔다. 하남 시니어 기자단의 일원인 나는 이번 답사 취재라는 명분으로 참가 신청을 하였다. 이 사실을 알게 된 기자단 7명 모두 대기 명단에 올렸는데 다행스럽게 함께 출발하게 되었다.
문화유적답사 장소는 ‘살아서는 진천에 거 하고, 죽어서는 용인에 거한다.’(生居鎭川, 死居龍仁)라는 충북 진천이다.
오전 8시가 되자 기계처럼 인원 확인 후 정확하게 출발하였고 물과 간식을 나누어 주었다. 인솔직원이 앞에 나와 "코로나로 3년 동안 행사가 중단되었다가 재개되어 기쁘게 생각하며 참가를 환영한다."는 안내 멘트가 있었다. 이어 하남향토역사연구소 유경상 소장이 나와서 행사의 목적과 답사의 취지와 의의를 알려주었다. 그리고 여행과 답사의 차이, 답사자의 태도에 대하여 설명하여 주었다. 역사에 대한 깊이 있는 설명은 역사에 대한 나의 무지가 탄로라도 나듯 날 부끄럽게 만들었다.
그동안 충북이 멀다고 생각하였는데 벌써 진천에 도착하였고 차에서 내리니 첫 답사지인 조선 말기 의사(義士) 보재(潽齋) 이상설의 생가였다. 생가는 정남향의 본채와 본채 앞의 헛간채가 있었는데 옛 정취가 가득한 초막이 나를 반겨 주었다. 문화원에서 나누어 준 안내 소책자의 기록에 보니 ‘이상설은 1870년 12월 7일 이곳에서 태어나 7세 때 이용우의 양아들이 되어 서울로 올라가 신학문을 접하게 되었고 1894년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한림학사 한성사범학교 교관, 의정부참찬을 지냈으며 온몸으로 독립운동에 헌신하다가 47세 나이로 병사하였다’라 기록되어 있다. 전시실에는 헤이그로 파송된 이상설 이준 이위종의 사진도 있었다. 공직자들 가운데 대개 자신의 직책을 통해 자신만을 위해 살았고, 개중에는 자신의 직책을 이용해 나라를 판 사람도 있고, 특별한 사람은 자신의 직책으로 나라를 위기에서 구한 사람이 있다. 그러나 이상설 그는 자신의 직책으로 나라와 민족을 위해 헌신한 사람이다. 그러기에 그 사람은 이미 이 세상에 없으나 그 업적이 그의 생가에 남겨져 교훈하고 있다.
“아~ 옛 시간과 옛 사람은 없고 생가(生家)만 남았구나.
어~ 그 생가 곁에 전시관은 지어져 그 업적은 남아 교훈하고 있구나.”
두 번째 답사 장소는 고려 고종 때에 임영 장군이 굴티부락 세금천에 축조한 석교(石橋) 농다리와 미루 숲이다. 농다리는 세종실록에 기록되어 있을 정도로 색다르다. 울퉁불퉁한 자연석으로 쌓아 올린 2m 내외의 교각과 그 위에 걸친 2~3m의 큼직한 돌 상판이 모양도 새롭다. 그 모양이 대바구니를 닮아 농(籠; 대바구니)다리라 한다. 큰 돌로 얼기설기 건축하여 강의 물살에도 저항하여 장마에 유실되지 않도록 만든 잠수교였다. 옛사람의 지혜를 감탄케 한다. 내가 농다리를 건널 때 내게 말하는 듯하였다.
“나그네가 건널 때는 물 흐름 속에 세월을 알려 주었소,
농부가 건널 때는 물소리로 희망의 노래를 들려주었소.
남정네가 건널 때는 코도 막고 눈을 감았소.
아낙네가 건널 때는 아래만 보았소.”
그 다음 버스에서 내린 곳은 궁채석갈비 식당이다. 설마 주최 측에서 갈비를 주랴? 함께 참가한 사람들의 궁금 사항이었다. 그런데 갈비뼈가 없는 돼지 갈빗살을 주었다. 난 먹으며 문화원에 등록비가 적어 미안하기도 했고 맛있어 고맙기도 했다.
세 번째 답사지는 상계리 태영산 기슭에 있는 김유신 장군 유허지(遺墟地)이었다.
삼국통일의 위업을 달성한 김유신 장군을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이분이 이곳에서 태어났다니 의아했다. 선지금의 계양(桂陽) 마을 입구에 장군 터(태수 관저가 있던 곳)라 불리는 곳에 1983년에 유허비(遺墟碑)를 건립하였는데 비문은 육당 최남선이 짓고 글씨는 서암 배길기가 썼다고 한다. 이곳에서 북서 방향 2㎞ 지점에는 태수 관저에서 사용했다는 우물터 연보정(蓮寶井)이 현존하고 있으며 무술 연습을 했다고 전해오는 투구바위와 치마대가 있다고 한다.
네 번째 방문지는 연꽃을 닮았다하는 보연산의 보탑사이다.
절 앞에 370살의 군나무가 사찰을 찾아온 손님을 먼저 맡는다. 1996년에 사찰이 지어져서 그런지 호화롭기는 하나 옛 정취는 없다. 기대보다 큰 사찰의 허전함을 예쁜 꽃들이 장식한다.
다섯째 방문지는 백고로 테마공원 내에 소재한 종(鐘) 박물관이다.
진천의 종 박물관은 한국 종의 연구 수집 전시 보존은 물론 기획전시, 교육 및 다양한 활동 등을 통해 세계적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은 곳으로 2005년 개관하였다고 한다. 이곳에서 나는 다양한 종과 제작과정을 알게 되었다. 종의 생명은 아름다운 소리와 널리 퍼짐과 내구성에 있을 것 같다. 그런데 그 우수성은 세계적이란다. 차 안에서 강론했던 하남향토역사연구소장의 말이 생각났다. 일본 강점기에 일본인들이 탐낸 것은 종과 불경이었다고 한다.
하남의 문화가 하남이다. 하남의 역사(HISTORY)는 하남의 이야기다. 하남시에는 어느 지역보다 훌륭한 역사적 문화적 가치가 있는 유적이 더 많다. 밖에 나가봐야 내 집의 소중함을 아는 것처럼 진천에 다녀오고 나니 하남의 문화 역사의 소중함을 더욱 알게 되었다. 나는 미사리 유적지, 이성산성, 하남향교를 방문한 일이 있다. 그뿐만 아니라 하남에는 그 밖에 많은 문화 유적들이 산재해 있다. 하남의 역사와 문화 유적이 재정이라는 미명 하에 발굴이 늦어지고, 개발이라는 미명 하에 땅에 영구히 묻히고 있지는 않은지 반성하여야 할 것 같다. 이성산성에는 반려견 카페의 큰 건물과 울타리가 이성산성을 침범당한 듯 하였고 성을 오르는 답사자의 길을 막고 있었다. 대한민국과 경기도와 하남시는 역사 문화에 인력과 재정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2022년 6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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